세 편의 글은 과학과 우리 삶에 관한 내용이었다. 첫 번째 글은 과학과 환경문제, 두 번째 글은 유전공학에 관한 글이었고 세 번째 글은 과학과 다이어트, 소비문화에 관한 글이었다. 이 글들은 모두 과학이 사회에 미친 악영향들을 꼬집고 있었다. 나는 처음 두 편의 글의 배를 불리려는 과학자 집단과 기업을 보며 인간은 성악설에 기반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학을 이미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데에 충분히 만들었고 또, 그로인해 파생된 문제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익집단들은 과학기술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가능한 많이 얻으려고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돈에 대한 욕심도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과학기술이 나쁜 문제들을 야기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고 있는 것 같다. 굳이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까지 남을 위할 필요는 없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되겠다는 심보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그들이 만든 과학 기술 문제로부터 피할 수 있는 것인가? 결국은 사람인 그들도 피하지못할 문제에 직면할 것이지만 그들은 그것 또한 과학으로서 해결이 가능하리라는 과학만능주의로 일관할 것 같다.
과학자들이 과학이 야기하는 문제들에 무신경한 것은 과학연구실과 정부기관, 대기업간의 구조적 관계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과학자가 연구하는 연구실이 지원비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기관의 구미에 맞는 연구를 진행하거나 대기업의 학문적 기반을 만들어주는 연구를 해야한다. 그리고 보통 정부와 기업은 부의 창출에 보다 관심이 많다. 그들에게 환경문제는 부의 창출보다 덜 중요한 것이고 자연스럽게 과학의 문제를 연구하려는 연구실의 지원비는 적으며 연구하려는 과학자들도 적은 것이다. 과학기술은 자본주의와도 연결되어있고 소비문화와도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과학이 야기하는 문제들에 무신경한 것은 과학연구실과 정부기관, 대기업간의 구조적 관계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과학자가 연구하는 연구실이 지원비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기관의 구미에 맞는 연구를 진행하거나 대기업의 학문적 기반을 만들어주는 연구를 해야한다. 그리고 보통 정부와 기업은 부의 창출에 보다 관심이 많다. 그들에게 환경문제는 부의 창출보다 덜 중요한 것이고 자연스럽게 과학의 문제를 연구하려는 연구실의 지원비는 적으며 연구하려는 과학자들도 적은 것이다. 과학기술은 자본주의와도 연결되어있고 소비문화와도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